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BC 석간 (문단 편집) == 개요 == ||<-2>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o5xUSKLxXj8)]}}} || ||<-2> '''{{{#fff TBC 석간의 역대 오프닝 모음집'''[* 초기 오프닝곡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https://youtu.be/bS9SUAa9cGY|Op. 20, TH.12 / Act 3 - No. 17 Scène: Entrée des invités (Fanfares)]]의 시작 부분이며, 그 외 동양방송 뉴스 오프닝도 같은 곡을 사용했다. TBC 석간의 오프닝이 바뀐 이후로도 TBC 뉴스 오프닝곡은 폐국할 때까지 이 곡을 썼다.]'''}}}'''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마지막 TBC 석간 진행 길종섭(기자), 이영혜(아나운서).png|width=100%]]}}} || ||<-2> '''{{{#fff TBC 석간 마지막 진행자 길종섭 기자, 이영혜 아나운서}}}''' || 평일 밤 9시와 주말 저녁 8시 45분에 방송했던 [[동양방송|TBC]]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이자 '''[[동양방송]] 보도 프로그램의 정신적 지주였다.''' TBC의 후신임을 자처하는 [[JTBC]]의 [[JTBC 뉴스룸]]에 해당하며, 채널 7을 이어받은 [[KBS 2TV]]로 따진다면 [[KBS 뉴스 6]]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72년 4월부터 1976년 8월까지 오프닝의 타이틀에는 '석간'이 한자(夕刊)로 표기되었다. 1976년 8월에 'TBC 리포트'로 타이틀을 변경하였으나, 1978년 6월에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이는 당시 정부에서 국어순화정책을 펴면서 방송에서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시 [[MBC 뉴스데스크]]도 [[MBC 뉴스의 현장]]으로 제목을 잠시 바꿨다.] 초창기에는 저녁 7시대에 방송했다가 얼마 안 가 밤 10시대로 편성 시간을 변경해 [[MBC 뉴스데스크]]와 경쟁했다.[* 원래 편성 시간인 저녁 7시대에는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스트레이트 뉴스]] 프로그램인 '''TBC 뉴우스'''를 편성했다.] 그러다가 1976년 시간대별 편성 지침에 따라 밤 9시대로 옮겼다. 1973년에는 진행을 맡던 기자들이 모두 하차하고, [[아나운서]]들이 진행을 맡기도 했으나,[[https://www.joongang.co.kr/article/1346101|#]] 얼마 안 가 봉두완, 노계원을 투입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674219750903m1088&set_date=19750903&page_no=8|#]] 1978년에는 이정애, 박초아 아나운서를 투입하면서 방송 사상 최초로 여성 아나운서가 [[메인 뉴스|저녁 종합뉴스]] 진행을 맡았으며, 이후 [[KBS 9시 뉴스]]에 이병혜 아나운서가 투입되는 등 남녀 더블 앵커 체제가 자리잡았다. 또한 이 때부터 크로마키 영상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484922|#]] 고별 방송 때는 생방송이 아닌 특집 방송으로 녹화하여 방영하였다.[* 당시 [[기독교방송]]이 보도 기능을 [[한국방송공사]]로 넘겨주기 전 마지막 라디오 뉴스에서 여자 아나운서가 울먹이며 진행하는 것이 화근이 되어 신군부는 고별 방송 지침을 만들어 각 방송사에 배포했고 지침에 따라 검열할 수 있게 사전 녹화를 해서 테이프를 보안사로 넘겨야 했다. 하지만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의 연출자는 녹화 테이프를 갖고 친구 집에서 자다가 마지막 날 주조정실로 넘겨서 방송을 했었다고... 하지만 가수 [[이은하]]가 울먹이며 노래를 부른 바람에 이은하 씨는 3개월 출연정지를 먹었고 배우 [[강부자]]도 울먹이며 마지막 말씀을 읽어나가 한동안 드라마 출연이 금지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당일 고별뉴스 초반에 [[길종섭]] 앵커가 애통함을 숨기지 못하고 약 3~4초 정도 입술을 깨문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었지만, 이후 특별한 제재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KBS 8시 뉴스]]라는 타이틀명으로 시간대를 옮겨 방송했지만 오래 가지 않아서 사라졌다. 보통 4명의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앵커를 맡았으며 서울판과 부산판[* 이는 마이크로웨이브 허가가 나지 않아서 동시방송이 불가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때문에 부산판은 [[지역 뉴스]] 중심으로 제작하되, 중요한 서울 소식이나 [[국제뉴스|해외 소식]]은 서울 본국에서 비행기로 필름을 수송해와 제작했다고 한다.]이 따로 제작, 방송되었다. TBC 석간 외에도 아침 7시에 [[TBC 조간]]을 방영했는데, 1973년 제 1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아침 방송이 중단되면서 종영하였다. TBC의 아침 방송은 폐국 이후 [[KBS]]로 통합되어서야 재개되었다. [[스포츠뉴스]]와 [[일기예보|날씨]]는 TBC 석간이 아닌 '''오늘의 스포츠'''와 '''일기해설'''[* 당시 [[대한민국 기상청|국립중앙관상대]] 기상 통보관 [[김동완(1935)|김동완]]이 캐스터로 일기예보를 했다. 그는 1982년 9월 [[문화방송|MBC]]의 기상전문 보도위원으로 스카웃되어 방송 역사상 최초의 전문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이라는 별도 프로그램으로 방송했다. 현재까지 풀버전이 공개된 방송분은 1980년 11월 30일 마지막 방송분이 전부이며, MBC Archive에서는 조회 결과 영상소재로 분류됐다. KBS나 JTBC에서 자료화면으로 TBC 석간이 가끔씩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방영분이 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나, KBS나 JTBC 그 어느 쪽에서도 방영분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적은 없다. 한편, 부산에서는 마이크로웨이브 사용 허가가 나지 않은 관계로 부산판이 따로 제작되어서 방송되었다.[[https://youtu.be/09PlQjmb5fk|#1]] [[https://youtu.be/jPtQydgYnt0|#2]] [[https://youtu.be/3ncQrg5x9_8|#3]] [[https://youtu.be/Jf1HHr8MfNc|#4]] 해당 영상은 당시 앵커를 맡았던 전옥수 전 아나운서가 개인 소장한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것인데, 이걸 원로 방송인 이장춘(전 KBS 관재국장)이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및 유튜브 채널에 분할 업로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